2008. 12. 23. 18:56
온라인 익명성의 종말…'단일ID'의 파급력은?
[ZDNet Korea 2008-12-23 16:00]

[지디넷코리아] 인터넷의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려 하고 있다. 익명에 얼굴도 없는 IP주소 대신, 소셜 컴퓨팅과 계속되는 기술 발전에 따라 ‘현실세계’와 ‘가상세계’의 경계가 불분명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웹2.0’이 오면서 미국의 네티즌들은 사진 공유 사이트에 자신이 찍은 사진을 올리고, 다른 사이트에서는 스텀블어픈(StumbleUpon)으로 북마크를 등록하고, ‘트위터’나 ‘딕닷컴’에 참여하는 등 생활의 단편을 인터넷에서 공유함으로써 자신의 정체성이 부분적으로 조금씩 공개되어가는 세계를 만났다. 그러나 이러한 소셜 미디어의 등장은 새로운 웹이 가져온 급속한 변화 중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가까운 미래의 웹에서는 익명성은 존재하지 못한다. 이미 익명성이 사라졌다는 주장도 있지만 아직까지는 틀린 주장이다. 현재 ‘트위터’ 등의 소셜네트워크 사이트에서 남의 이름이나 브랜드를 가장한 사람들은 차고 넘치고, 유명인을 ‘마이스페이스’에서 검색해보면 그 인물의 ‘공식 홈페이지’라는 이름의 웹페이지가 수백페이지에 달한다. 하지만 그러한 ‘위장’의 시대는 곧 임종을 맞을 것이다.

◇인터넷 세계에서의 ‘위장’은 이제 범죄

미국의 경우 인터넷 실명제 주장의 일등공신은 ‘로리 드류의 마이스페이스’ 사건이다.

로리 드류라는 중년 여성은 자신의 딸과 심하게 다툰 딸의 친구를 괴롭히기 위해 소년으로 위장해 ‘미국판 싸이월드’인 마이스페이스에 가입해 딸의 친구에게 접근했다. 처음에는 온갖 감언이설로 그 소녀를 꾀어 사귀는 척했다가 나중에는 “너 같은 건 죽어버려야 세상이 좋아질 것”이라는 악담을 퍼부으며 다른 사람들까지 동원해 소녀를 집단으로 괴롭혔고, 소녀는 결국 자살했다.

이 사건을 다룬 최근 판결에서는 인터넷상에서 가공의 인물을 만들어낸 행위를 범죄로 간주했다. 인터넷에서의 ‘집단괴롭힘’과 ‘악플’이 자살로 이어진 점도 그렇지만, 이번 판결에 따라 인터넷에서 새로운 인격을 만드는 행위에 대해 빨간불이 켜졌다.

미국 헤리티지재단의 법률전문가인 앤드류 그로스먼은 “이 판결이 유효하다면, 인터넷 사이트의 모든 것에 형법이 필요하게 된다”며 “지금까지는 작은 계약에 불과했던 것들이 중대한 범죄적 금지 조치가 된다”고 지적했다.

◇‘진짜’ 자신의 인증

‘가짜’를 배제하려는 사이트의 요구에 응하려면 새로운 방식의 인증이 필요하게 된다.

페이스북이나 구글은 이용자가 신청자 본인인지 신원을 확인하기 위한 솔루션을 제공할 준비를 이미 갖췄다. ‘페이스북 커넥트’ ‘구글 프렌드 커넥트’와 야후의 ‘오픈 스트래티지’에서는 체계적인 ID관리를 위한 준비를 진행중이다. 이들 기업은 온라인 ID에 관한 사실상의 제공업체가 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그러나 이 경쟁이 실현되면 결국 인터넷의 익명성은 사라지게 된다. 이런 종류의 인증 방식을 채용한 사이트에서는 앞으로 이용자는 ‘악플’을 남기기 위한 일회성의 이용자명이나 패스워드를 만들 수 없게 된다. 온라인에서도 이용자는 이용자 자신으로서, 현실의 공공장소에서 만났을 때와 같은 기준을 준수해야 하는 것이다.

◇단일 ID가 끼치는 심리적 영향

마이스페이스가 지원을 약속한 이상주의적인 계획 ‘오픈ID’에 대해서는 구글이나 마이크로소프트(MS), 야후 등의 대기업뿐 아니라 미국의 오바마 차기 대통령도 환영하고 있다. ID가 하나로 통일되면, 일종의 신원증명서를 사용해 수많은 사이트에 손쉽게 접근할 수 있다.

보통 사람들은 ‘오픈ID’의 전문적인 측면은 모르더라도, 그 심리적인 영향은 점차 나타나게 될 것이다. 자신이 여러 사이트에 걸쳐 하나의 신원증명서와 하나의 이용자명을 사용하는, ‘1명의 인간’이라는 개념을 접하면, 스스로의 행동이 추적 가능해지기 때문에 지금까지처럼 익명의 존재는 아니라는 자각이 생기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용자 데이터의 지배자

단일ID이 세상에서 구글은 ‘새로운 지배자’가 될 것이다. 검색엔진을 비롯해 이메일 서비스인 ‘지메일’과 무료 분석툴을 사용하기 위해 사람들은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대량으로 구글에 제공해 왔다. 우스갯소리처럼, “구글은 당신이 어디에서 무엇을 하는지 모두 알고 있다”.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에 나타나는 무서운 미래상은 이미 현실로 다가왔다. TV화면으로 우리를 응시하는 ‘독재자’의 문제가 아니다. 정부도 아닌 일개 기업에, 개인 데이터와 아이덴티티를 맹목적으로 기꺼이 내미는 세계가 된 것이다.

◇적응을 위한 싸움

아마도 미국 사회에는 익명성 결핍에 따른 변화에 적응하기 위한 다양한 방법이 등장할 것이다. 페이스북과 같은 소셜사이트에 재미로 사진이나 글을 올렸다가 바로 ID를 추적당해 일자리를 잃고 재취업도 되지 않는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

하지만 좋은 점은 악플은 물론이고 타인을 찍은 사진을 마구잡이로 올리는 현 세태가 개선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프라이버시가 침해되는 만큼 또다른 프라이버시는 보호될 수도 있는 것이다.

서로 상처를 받지 않을 유일한 방법은 ‘남 앞에서는 항상 조심’하는 방법밖에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인터넷에서의 익명성이 없어지면, 스스로 항상 기록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면서 사람들은 ‘원래 모습’ 보다는 타인에게 보여지기 위한 ‘또다른 인격’을 만들어낼 가능성이 높다.

이를테면 요즘 인기를 얻고 있는 이른바 ‘리얼리티 프로그램’도 출연자가 카메라가 자신을 찍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남에게 보여주기 싫은 본모습을 보여줄 수 없게 된다. 자신의 ‘브랜드 이미지’가 공공장소에서의 정체성이 되고, 결국은 자신의 정체성으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현실적으로 생각하면, 온라인에서 익명성을 잃는 일이 나쁜 것만은 아니다. 보안을 위해 사이트마다 ID와 PW를 각기 다르게 하고, 그것을 관리하느라 골머리를 앓을 필요가 사라진다. 검색데이터에도 한 곳에서 간단히 접속할 수 있다.

다만 간편한 로그인, 검색가능한 개인 데이터나 웹 이력, 또 많은 친구가 있는 소셜네트워크와 같은 편리함은 그 과정에서 자기 자신의 일부를 교환한 대가로 주어진다는 점을 잊어선 안 된다.

새로운 인터넷에서는 자신의 아이덴티티와 개인정보가 서비스의 대가가 된다. 우리가 우리의 개인 데이터를 넘겨준 기업이 자사의 이익을 위해서 그 데이터를 사용한다면, 이미 버스는 떠난 것이다. 그때 아무리 화내봤자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스스로를 탓하는 일밖에는 없다. @


Sarah Perez(ReadWriteWeb)=정리, 박효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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